Trip to France - Musee de Louvre : The Raft of the Medusa

The Raft of the Medusa : Denon 1F, Exhibition Hall No. 700

<DENON 1F Hall No. : 700, The Raft of the Medusa>

1. 메두사의 뗏목 (Le Radeau de la Meduse)
1816년 44개의 대포로 무장한 프랑스 해군 전함 '메두사 호'는 프랑스 본토를 출발하여 아프리카의 세네갈로 향합니다. 전함의 출항 목적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영국에게 점령당했던 세네갈을 영국이 프랑스에 반환함에 따라 과거 식민지 영토를 되돌려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함장은 왕당파 귀족 '위그 드루와 쇼마레'로 소위 줄타기로 연명해 온 장교였기에 경험이 매우 미천했고, 은퇴 후 수년간 항해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장으로 임명됩니다. 이것이 세네갈로 향하는 '메두사 호'의 항해에 영향을 미쳤는지 결국 메두사 호는 7월 2일 대서양의 캡 블랑크 (Cap Blanc) 근처에서 엄청난 풍랑에 휘말려 모리타니아 앞 160km 지점의 아르갱 모래톱에 걸려 좌초되고 맙니다. 가까스로 암초에서 벗어나는데는 성공하지만 이미 심하게 손상된 전함은 침몰을 피할수 없었고 이때 함장이었던 쇼마레는 믿을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총 400 여명의 승무원 중 하급 승무원 149명을 침몰하는 배에 버려둔 채 6개의 소형 보트와 린치 (대형 보트)에 나눠타고 탈출해 버립니다. 


<The Raft of the Medusa : Theodore Gericault, 1817~1820년>

침몰하는 배에 버려진 149명의 승무원들은 전장 20미터에 폭 7미터 짜리의 뗏목을 만들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바닷물에 젖은 비스킷과 소량의 포도주뿐이었습니다. 좁은 뗏목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149명의 조난자들은 얼마있지도 않던 식량이 고갈되어 가고, 거친 격량에 뗏목이 부서져 동료들이 익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뗏목 위에서 서로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식량이 떨어졌을 때 결국 사망한 동료의 인육을 먹기 시작합니다. 표류 13일만에 같은 원정대 소속이었던 '아르귀스 호'가 이들을 발견했을 때 149명의 조난자 가운데 1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15명의 생존자 중 군의관이었던 '사비니'가 본국으로 귀환하는 배 선상에서 보상을 목적으로 그가 겪었던 일을 보고서로 작성합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한 일들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는 물론 동료 시민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도착 후 이 보고서는 해군 본부에 제출되었으나 사건을 은폐하려는 해군 장관이 이를 묵살하고, 오랜 병원 생활 후 건강을 되찾은 측량 기사 '코레아르'가 보완하여 책으로 출간됩니다.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이 사건은 루이 18세의 무능한 정권에 대해 엄청난 비난 여론을 불러 일으키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사비니와 코레아르를 식인 혐의로 법원에 고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이 사건을 접한 뒤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지 못하고 은폐되는 것과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제목의 유화를 1819년 프랑스 살롱에 출품합니다. 사비니와 코레아르가 쓴 "메두사 호의 조난"은 번역되어 국내 출간된 상태이니 미리 읽고 루브르를 방문하신 다면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메두사호의 조난 : 국내 출간도서>


<Episode Comp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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