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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nze - Duomo E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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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ution 2 for Technical Challenge - Herringbone Technique 1. Herringbone Technique 이중 돔을 이용한 하중 감소 방법은 얇아진 두 장의 돔이 단독으로 서 있음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 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긋 쌓기 또는 오늬 쌓기 (Herringbone Technic : 헤링본 테크닉)로 알려진 벽돌 쌓기 방법을 도입합니다. 오늬 쌓기로 쌓여진 수직 벽돌은 90 센티미터 간격으로 수평 벽돌층을 끊었고, 이렇게 끊긴 수평 구간에 대략 다섯개의 벽돌이 들어갔습니다. <Herringbone Technique> <돔과 돔 사이의 공간 - 헤링본 테크닉> 이렇게 쌓여진 다섯 줄의 벽돌은 양 옆의 수직 벽돌이 받침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제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새로운 층은 완성된 층들과 맞물리면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자기 완결성을 가진 수평 아치로 탈 바꿈하게 됩니다. <Episode Complete>

Firenze - Duomo E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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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ution 2 for Technical Challenge - Double Dome 1. Double Dome for Firenze Duomo 브루넬레스키가 적용한 두 번째 방법은 네리의 설계에서 부터 시작된 이중 돔을 이용한 하중의 감소입니다. 이중 돔 구조가 아닌 하나의 벽으로만 돔을 쌓을 경우 석재의 무게는 엄청나게 증가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안쪽에는 2.3 미터 두께의 돔을, 바깥쪽에는 1미터 두께의 돔을 쌓고 브릿지를 사이에 두어 두 돔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Structure of Double Dome> 결국 이런 이중 돔의 구조로 돔과 돔 사이엔 공간이 생기게 되고, 건축 당시 이 공간은 작업자들의 이동 통로로 현재엔 관광객들이 쿠폴라로 향하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이중 돔으로 인한 돔과 돔 사이의 공간> 'To be Continue'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7-3.html

Firenze - Duomo E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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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ution 1 for Technical Challenge - Pantheon 1. Pantheon 중심축을 지탱하는 목조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고 평균 지름 43미터의 돔을 올리는 천재적인 방안은 브루넬레스키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올리기 위한 기술적 영감을 로마 판테온에서 얻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로마 판테온은 7개 행성의 신들을 경배하기 위한 건축물로 최초의 기원은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군사적 동반자였던 '마르쿠스 비프사니우스 아그리파'에 의해 신축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A.D 80년 대화재로 소실 되었던 것을 A.D 118~125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석재 건물로 재건되면서, 최초 설립자인 아그리파를 존중하는 의미로 옛 판테온의 정면부에 새겨졌었던 라틴어 문구를 다시 새기게 됩니다. ( M·AGRIPPA·L·F·COS·TERTIVM·FECIT : 루키우스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지었다.) <M·AGRIPPA·L·F·COS·TERTIVM·FECIT > 판테온 건축의 비밀은 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폭 6.9 미터의 두꺼운 벽체와 하중을 줄이기 위한 1.6 미터 두께의 천장부 그리고 60 센터미터까지 얇아지는 원형창이 뚫려 있는 정상부 입니다. 수평부의 벽을 형성하는 목조 형틀에는 무려 5,000 톤의 콘크리트를 쏟아 부었으나, 돔의 정상부에는 속돌과 같은 가벼운 골재를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하중을 더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위에 빈 항아리 모양의 암포라를 올리고 돔 안쪽은 속을 파낸 격자형 무늬로 만들어 하중을 줄이고 장식미를 더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Pantheon Ceiling> 판테온을 보면서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에도 엄청난 면적의 돔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이며 , 판테온의 건축 방식과 동일하게 피렌체의...

Firenze - Duomo E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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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rage Diameter 43 meter - The Challenge of Architectural Technology 1. Average Diameter 43 m, Surpass the Pantheon 네리의 설계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해도 네리의 설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난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건축 기술로 돔을 올리기 위해서는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던 모르타르가 굳을때까지, 아래 사진처럼 석재를 지탱해줄 목조 구조물을 만들어 돔을 지탱해야 했습니다. <Wooden Structure for Stone Support> 목조 구조물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석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했고, 총 중량이 증가해도 절대로 휘어져서는 안됐으며, 공사가 완료된 뒤 철거하기에도 간편해야 했습니다. 대성당 돔의 크기가 사상 최대였던 만큼 목조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의 양은 대략 700 그루였고, 그 많은 나무를 구할수 있다 하더라도 중세 시대의 모르타르는 적어도 일 년에서 일 년 반은 지나야 완전 건조가 가능했기에 돔을 지탱하는 목조 구조물은 휠 수 밖에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중심축을 지탱하는 목조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고 평균 지름 43미터의 돔을 올리는 천재적인 방안을 건축이 처음이었던 피렌체의 금 세공사,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해 내게 됩니다. 'To be Continue'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5-1.html

Firenze - Duomo EP3

Secondary Design : 'Giovanni di Lapo Ghini' vs Neri di Fioravanti 1. Raise the dome of Santa Maria del Fiore 조반니는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고딕 양식의 전형인 플라잉 버트레스 (공중 부벽)를 적용한 모형 제작에 착수 하였으나, "네리 디 피로라반티"는 고딕 양식에 대한 반감과 돔의 하중 지지를 위한 외부 구조물 설치를 거부함에 따라 돔의 설계 방향이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시대에는 정역학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건축물에 대한 구조적 안정성을 검증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많은 건축물이 완공 후 또는 공사 도중에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플라잉 버트레스 (공중 부벽)을 설치하지 않고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올릴 수 있다는 네리의 설계는 피렌체 시민들이 꿈꿔왔던 혁신적인 설계였으나, 구조적 안정성에 대한 염려로 시민 투표에 붙여지게 되고 결국 네리의 설계로 최종 채택되게 됩니다.  최종 선정된 네리의 설계에는 두 가지 독창적인 면이 있었는데, 돔이 돔을 감싸는 이중 구조와 역학적으로 가장 안정된 원의 구조가 아닌 고딕 건축물의 첨두 아치와 같은 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5등분 첨두의 팔각형 돔이었다는 사실입니다. 'To be Continue'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4.html

Firenze - Duomo 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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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Began on 19 August 1489 "<건축 설계안 모집 공고 - 현재 교회 건축 사업단의 주도 아래 신축되는 대성당의 주 돔 궁륭 공사를 위한 모형이나, 설계안 (돔, 즉 둥근 천장의 완공에 도움이 되는 골조, 비계 같은 구조물 내지 기중기의 모형 또는 설계안)을 제출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는 9월 말까지 응모하기 바람. 채택된 안에 대해서는 금화 200 플로린을 지급할 예정임>"  현재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자리에는 "산타 레파라타"라는 작은 성당이 있었습니다. 다른 경쟁 도시 국가인 피사나 시에나와 비교 했을때, 모직 산업과 금융업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피렌체를 대표하는 성당으로는 너무 초라했기에, 1296년 레파라타 성당을 허물로 피렌체 대성당의 신축 공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1. Primary Design : 아르놀포 디 캄비오 피렌체 대성당의 1차 설계자는 베키오 다리를 축조한 아르놀포 디 캄비오라는 일급 석공이었습니다. 그가 작성한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원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으나, 1970년대 실시된 돔 기초부의 발굴 작업을 통해 그가 세우려된 최초 돔의 크기는 지름이 62 브라키아 (브라키아 : 피렌체에서 통용되던 길이 단위), 즉 36미터 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 - 출처 : 위키디피아> 2. 대 건축장 - 조반니 디 라포 기니 1330년대부터 대성당의 건설과 자금 조달은 모직 상인 조합이 맡게 되었으나, 건축에는 전혀 문외한이었기에 때문에 대성당의 설계와 건축 모형을 총괄하고, 현장에서 인부를 관리 감독할 카포 마에스트로 (건축장)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때 선정된 카포 마에스트로가 "조반니 디 라포 기니"라는 사람이었고, 캄비오의 최초 설계에 의한 대성당의 돔을 얹기 위한 모형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축 사업단 임원들은 건축가들끼리 경쟁을 시키...

Firenze - Duomo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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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elleschi , Birth of Architectural Genius <Brunelleschi's Dome>  정식 금 세공사로서 기베르티를 제치고 당당히 공모에 당선되기를 염원해 마지 않았던 브루넬레스키는 공모 이후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로 떠나게 됩니다.  간혹 중간에 피렌체로 돌아왔던 시기도 있었으나, 거의 13년 동안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체류했으며, 그 시간 동안 고대 로마 유적과 건축물의 구조에 대해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생활하는 동안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행색은 거의 돌보지 않은 채 떠돌이 생활을 했고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땅을 파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기호와 아라비아 숫자들을 양피지에 기록합니다. 양피지의 기록이 어떤 대상과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잔노초 마네티"는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의 유적을 조사하면서 그 크기와 비율을 기록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 당시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실용 기하학은 피렌체에서 보편화 되어 있는 수학적 지식이었고, 사분의나 거울을 이용한 계측 방법에 대해서도 실용 기하학에 설명 되어 있었기 때문에 브루넬레스키가 계측법에 대해 몰랐을리가 없다는 추정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특히 브루넬레스키가 주의 깊게 관찰했던 것은 B.C 118년과 128년 사이에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석조 건물로 재 건축된 판테온이었으며, 그 이유는 1418년 8월 19일 밝혀지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2-1489-8-19.html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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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st of 'Porta del Paradiso' <34 킬로그램 네 개의 청동판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장면을 형상화 할 것. 높이 43cm에 폭 33cm 규격의 장식판 모형을 일 년 안에 완성하여 공모할 것 - 출처 : 브루넬레스키의 돔, 로스 킹> 1. San Giovanni's Goldsmiths - Filippo Brunelleschi  <Filippo Brunelleschi> 피포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브루넬레스키... 피렌체의 공증인이었던 브루넬레스키의 아버지는 (세르 브루넬레스키 디 리포 라포) 아들이 자신의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기계를 다루고 고치는데 재주가 있던 아들을 위해 지인 (베닌카사 로티)이 운영하던 공방에 도제로 들여보내 금 세공 일을 배우게 합니다.   중세 시대에 가장 각광받던 직업이 금 세공사이기는 했으나 일의 특성상 유황이나 납 등의 유독물을 다루고, 한 여름에도 용광로 앞을 벗어날 수 없고 상습 침수 구역으로 악명이 높았던 산타 크로체에 공방이 위치해 있는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브루넬레스키는 1398년, 스물 한살의 나이로 어엿한 정식 금 세공사가 됩니다.  피렌체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브루넬레스키는 피스토이아에 머물며 다른 화가들과 함께 그 곳 대성당의 제대 장식 공사를 벌이고 있었으나, 공모 소식을 듣고 피렌체로 돌아오게 됩니다. 2. Lorenzo Ghiberti  < Lorenzo Ghiberti  - 출처 :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브루넬레스키의 평생의 라이벌로 알려져 있는 로렌초 기베르티는 "치오네 부오나코르소"라는 난봉꾼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설에는 금 세공사였던 "바르톨루치오 기베르티"의 사생아 였다는 소문이 있음). 기베르티는 세례당 청동문 공모당시 바르톨루치오의 공방에서 도제 ...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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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a del Paradiso - Miracles of Florence 1. Why did Florence build the 'Porta del Paradiso' of the San Giovanni Baptistery? : Abraham, Isaac and the Miracles of Florence <Porta del Paradiso - Lorenzo Ghiberti> 도시 인구의 60%가 이유 모를 질병 (흑사병)으로 사망하고, 외세의 침입 (비스콘티 잔갈레아초)으로 함락 직전의 위기까지 몰리게 됐을 때, 피렌체 시민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안식처는 종교였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여 구원을 갈망하면 이 암흑의 천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 모든 피렌체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였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교체 프로젝트를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주제로 추진함으로서 피렌체가 죽음의 위협에서 구원 받기를 원했던 것 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로 찌르는 순간, 하늘에서 급히 내려온 천사에 의해 이삭이 구원을 받았듯이 피렌체의 사람들도 흑사병의 위기에서, 잔갈레아초의 침입에서 구원 받기를 바랬던 것 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피렌체 직물 조합은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주제로 청동문 제작 공모를 하게 되고 그 유명한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 간의 경쟁이 시작됩니다. 'To be Continued'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1/blog-post_14.html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4

Porta del Paradiso - Ciompi Revolution 1. Why did Florence build the 'Porta del Paradiso' of the San Giovanni Baptistery? : Fourth Reason - Ciompi Revolution 촘피는 피렌체에서 양모를 손질하는 하급 기술자를 지칭하는 말로 현재의 피렌체 촘피라는 곳에서 모여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용주에 고용된 하급 노동자였기 때문에 자체적인 길드를 조직할 수 없었고, 길드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대변할 그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피렌체의 양모 산업 발전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하급 기술자라는 이유로 지독한 빈곤과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다, 결국 1378년 폭동이란 형태로 그 동안 쌓여 왔던 울분을 터트리게 되고 4년 동안이나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지만 결국 내분으로 인하여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blog-post_77.html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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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a del Paradiso -  Financial Bankruptcy 1. Why did Florence build the 'Porta del Paradiso' of the San Giovanni Baptistery? : Third Reason - The Collapse of Financial Service <Hundred Years' War - Joan of Arc> 1. Florence's Third Crisis : Financial Bankruptcy 백년 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의 왕위 계승 전쟁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양국의 경제적 이권 획득을 위한 전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피렌체는 내륙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항구들을 이용하여 지중해 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비단과 모직물을 생산하는 섬유 산업이 크게 발달함으로 인해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부는 자연스럽게 금융업의 발달을 가져오고 백년 전쟁으로 인해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국왕에게 막대한 돈을 빌려 주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에게 빌려 줬던 막대한 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피렌체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이 파산하는 등 금융업의 파산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피렌체 전반을 흔들게 됩니다. < Hundred Years' War - Joan of Arc > 'To be Continued'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blog-post_34.html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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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a del Paradiso - Invasion of Milan 1. Why did Florence build the 'Porta del Paradiso' of the San Giovanni Baptistery? : Second Reason - Invasion of Milan  <밀라노의 침입 - 잔갈레아초 비스콘티> 1. Florence's Second Crisis : Invasion of Milan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중세 이탈리아는 상당 기간 동안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1100년을 전후로 자치권을 얻어 독립하는 도시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와 같은 독립 도시 국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밀라노의 "잔갈레아초 비스콘티"는 잔인하고 야심 만만한 독재자로서 1395년, 삼촌이며 장인이었던 베르나보 비스콘티를 투옥하고 독살한 뒤 밀라노의 권력을 장악합니다.  그 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바츨라프 4세에게 뇌물을 먹여 밀라노 공작으로 최종 인정 받게 됩니다. 북부 이탈리아를 장악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잔갈레아초는 이탈리아 통일의 야심을 가지고 피사, 시에나, 페루자를 복속시키고 드디어 피렌체를 포위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피렌체는 항구로 통하는 모든 길이 끊기고, 식량은 고갈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https://rocinante1605.blogspot.com/2019/02/blog-post_3.html

Firenze - Porta del Paradiso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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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a del Paradiso - Paste 1. Why did Florence build the 'Porta del Paradiso' of the San Giovanni Baptistery? : First Reason - Paste <Paste> 역사적으로도, 문화사적으로도 유명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 간의 산 조반니 세례당, 천국의 문 공모 경쟁 이야기에 앞서 천국의 문 제작 공모가 무슨 연유에서 시작 되었는지 그 시대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수 많은 명화와 조각, 건축물을 볼 때 앞에 보이는 물리적 형상에 집중하기에 앞서 그 안에 숨겨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다면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배가 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적 부흥기의 중심에 있었던 피렌체에서 신의 구원을 간절히 염원할 정도의 삶의 위기가 있었다는 점은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 피렌체는 치사율 90% 이상의 흑사병의 창궐과 밀라노의 포위 공격 그리고 금융업의 파산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던 사회적 혼란기에 피렌체 직물 조합은 '산 조반니 세례당 (San Giovanni Baptist)의 청동문 제작 공모를 진행하게 됩니다. 공모 주제로 내건 '아브라함과 이삭'은 당시 피렌체의 상황을 빗대어, 모든 위기에서 기적과도 같은 구원을 바라는 피렌체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었고, 이 청동문 제작을 계기로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는 평생의 라이벌 관계를 맺게 됩니다.  1) Florence's First Crisis : Paste 유럽에서 흑사병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는 1347년 제노바의 식민지 카파 (Caffa)라는 곳 입니다. 흑사병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존재 하지만, 역사학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몽골군의 서유럽 정벌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