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to Turkey - Harem of Topkapi Palace

Harem of Topkapi Palace

<Fig-1_Imperial Hall in Harem : Ref-2>

1. 하렘 (Harem)에 대하여
2) 터키를 포함한 이슬람 국가를 여행할 때 하렘을 방문하게 된다면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한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 오리엔탈리즘 회화와 아랍어 원전에는 있지도 않은 엉뚱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과장하여 외설적인 면을 부각시켜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에 묘사된 하렘은 이슬람의 하렘이 아닙니다. 오리엔탈리즘 회화와 아리비안 나이트의 하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짓의 공간일 뿐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지금까지 배워왔고 보고 들었던 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갈것 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매트릭스의 레오가 빨간약을 선택했듯이... "1) Harem and Orientalism" 에 링크된 글을 먼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 이슬람 바로 알기
1) 이슬람의 "성문화"와 "하렘"
이슬람 사회에서는 육체적 성 행위를 "지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한 알라의 창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행위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슬람교는 성 행위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불교나 기독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는 승려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출가를 내세웠고, 출가 승려들은 평생 동안 엄격한 금욕 생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기독교의 교부 철학을 완성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욕을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 원죄의 산물로 죄악과 타락의 근본 원인으로 규정하고 동정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강요하지 않으며 "꾸란 4장 1절"의 내용을 기반으로 오히려 결혼을 의무화합니다.
"يَا أَيُّهَا النَّاسُ اتَّقُوا رَبَّكُمُ الَّذِي خَلَقَكُم مِّن نَّفْسٍ وَاحِدَةٍ وَخَلَقَ مِنْهَا زَوْجَهَا وَبَثَّ مِنْهُمَا رِجَالًا كَثِيرًا وَنِسَاءً ۚ وَاتَّقُوا اللَّهَ الَّذِي تَسَاءَلُونَ بِهِ وَالْأَرْحَامَ ۚ إِنَّ اللَّهَ كَانَ عَلَيْكُمْ رَقِيبًا - 4:1 (Qur'an 4:1)"
"O mankind, fear your Lord, who created you from one soul and created from it its mate and dispersed from both of them many men and women. And fear Allah, through whom you ask one another, and the wombs. Indeed Allah is ever, over you, an Observer."
"사람들이여, 주님을 공경하라. 그 분은 너희를 하나의 영혼으로부터 창조하사 그로부터 배우자를 두어 남녀가 풍성히 번성토록 하였노라" (꾸란 4:1)
이와 같이 이슬람 사회는 성에 대해 긍정적인 관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간의 자유 연애에 대해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격한 규제를 가합니다. 꾸란 4장 1절에 기반한 이슬람의 성 인식을 볼 때 이슬람의 성문화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으며 이러한 사례는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 (Sharī‘a)" 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샤리아" 에서는 "일부 사처제", 즉 한 명의 남자가 네 명의 부인까지 거느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이는 성욕을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로 보고 무조건 억제하기 보다 적절히 선용하는 것이 낫다는 관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한 명의 부인에게서 만족하지 못할 경우 매춘, 간통 등과 같은 원죄의 방법으로 성욕을 해소하기 쉬운데, 이슬람의 율법은 바로 이러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네 명의 부인까지 허락한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대한 "허용"의 이면에는 강한 "금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율법은 일부 사처제라는 허용된 틀 이외의 어떠한 성적 결합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남녀가 사적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슬람 사회는 여성을 "하렘 (Harem)"이라는 외딴 공간에 격리시키고 외출 시에는 여성의 육체를 베일로 가리는 강한 금기의 조치를 취합니다. 

2) 하렘 (Harem)의 기원과 의미
"하렘 (Harem)"은 아랍어인 "하림"에서 유래된 말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신성한 것"이며, 두 번째는 "불가침적인 것" 입니다. 즉, 하렘은 너무나 소중하고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외부에 보여줄 수 없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슬람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을 "하렘" 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랍인들은 전통적으로 신성하거나 귀중한 것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으며,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 공간으로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안채가 바로 하렘인 것 입니다.

이슬람에서 하렘의 설치 근거는 꾸란의 "33장 53절" 에 있습니다. 꾸란은 외간 남자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를 함부로 대면하지 못하게 규정하며, 불가피할 경우 그들 사이에 장막을 설치하도록 합니다. 꾸란에서 언급하는 "장막"이란 폭 넓은 함의를 지닌 의미로 여성의 몸에 걸치는 베일이 될 수도 있고, 공간에 경계를 설정하는 하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하렘이 갖는 종교적 의미는 여성의 몸을 가리는 베일과 동일하며, 이 둘은 성과 속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을 합니다.
"يَا أَيُّهَا الَّذِينَ آمَنُوا لَا تَدْخُلُوا بُيُوتَ النَّبِيِّ إِلَّا أَن يُؤْذَنَ لَكُمْ إِلَىٰ طَعَامٍ غَيْرَ نَاظِرِينَ إِنَاهُ وَلَٰكِنْ إِذَا دُعِيتُمْ فَادْخُلُوا فَإِذَا طَعِمْتُمْ فَانتَشِرُوا وَلَا مُسْتَأْنِسِينَ لِحَدِيثٍ ۚ إِنَّ ذَٰلِكُمْ كَانَ يُؤْذِي النَّبِيَّ فَيَسْتَحْيِي مِنكُمْ ۖ وَاللَّهُ لَا يَسْتَحْيِي مِنَ الْحَقِّ ۚ وَإِذَا سَأَلْتُمُوهُنَّ مَتَاعًا فَاسْأَلُوهُنَّ مِن وَرَاءِ حِجَابٍ ۚ ذَٰلِكُمْ أَطْهَرُ لِقُلُوبِكُمْ وَقُلُوبِهِنَّ ۚ وَمَا كَانَ لَكُمْ أَن تُؤْذُوا رَسُولَ اللَّهِ وَلَا أَن تَنكِحُوا أَزْوَاجَهُ مِن بَعْدِهِ أَبَدًا ۚ إِنَّ ذَٰلِكُمْ كَانَ عِندَ اللَّهِ عَظِيمًا - 33:53 (Qur'an 33:53)"
"Believers, enter not the houses of the Prophet without his permission, nor wait for a meal to be prepared; instead enter when you are invited to eat, and when you have had the meal, disperse. Do not linger in idle talk. That is hurtful to the Prophet but he does not express it out of shyness; but Allah is not ashamed of speaking out the Truth. And if you were to ask the wives of the Prophet for something, ask from behind a curtain. That is more apt for the cleanness of your hearts and theirs. It is not lawful for you to cause hurt to Allah's Messenger, nor to ever marry his wives after him. Surely that would be an enormous sin in Allah's sight." (Qur'an 33:53)
"너희는 예언자의 아내로부터 무엇을 요구할 때, 장막을 사이에 두고 하라. 그렇게 함이 너희 마음과 예언자 아내들의 마음을 위해 순결한 것이라. 너희는 알라의 예언자를 괴롭히지 아니하도록 처신하라. 너희는 그녀들과 결혼할 수 없노라. 이것은 실로 알라 앞에 큰 죄악이 되느니라" (꾸란 33:53)
하렘 (Harem)은 원래 가까운 남자 친척 이외 외간 남자들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집안 여성들만을 위한 분리된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하렘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하렘이 아니라, 술탄과 귀족들이 애첩들과 은밀한 애정 행각을 벌였던 환상적 이미지가 가미된 하렘입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전 이슬람 역사에 걸쳐 가장 오랫동안 최고의 부와 사치를 향유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하렘 문화는 이국적 정취에 매료되었던 서구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선정적인 왜곡에 의해 현재의 인식이 고정된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3) 서양에서 하렘 (Harem)이란?
서양인들에게 "하렘 (Harem)" 이라는 단어는 술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의욕으로 가득 찬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성 노예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진정한 "하렘 (Harem)"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화가들의 부적절한 묘사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인식에 불과합니다. "하렘 (Harem)"은 아랍어인 "하림"에서 유래된 말로 "신성한 것과 불가침적인 것" 두 가지를 의미하며, 보편적으로는 가족 구성원 중 특히 여성을 위한 별도의 주거 공간을 의미합니다. 터키인들에게 "하렘 (Harem)"은 성적 환상의 공간이 아닌 존중과 존엄성을 함축하고 있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톱카프 궁전에서 "하렘 (Harem)"은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제국의 일부분으로 주된 역할은 오스만 제국의 왕위 계승자, 즉 적자 자손의 계통을 유지할 수 있게 함으로서 왕위 계승 문제로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술탄은 하렘에서 한 집안의 가장이었으며 여성 노예로 구성된 수 백명의 "후궁 (Concubines)" 들이 있었어도 이들은 술탄과 성적 관계없이 하렘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노동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율법상 술탄은 최대 4명의 여성을 정식 부인으로 둘 수 있고 하렘에 기거하는 수 백명의 후궁들이 그 후보였으나 
자신이 원하는 그 누구와도 성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었고, 오직 선택된 여성에 한하여 그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술탄의 마음에 들어 후계자를 잉태한 후궁은 "하세키 술탄 (haseki : خاصکى سلطان)" 이라 불리며 정식 첫 번째 부인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3. Harem of Topkapi Saray
1) Topkapi Palace의 건설
<Fig-2_Sultan Mehmet-II>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는 두 달에 걸친 격렬한 공방전 끝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킵니다. 함락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수도는 현재 터키의 가장 서쪽 끝, 그리스와 불가리아의 국경 도시였던 "에디르네 (아드리아노플 or 아드리아노폴리스)" 였으나, 메메드 2세는 제국의 수도를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에서 "이스탄불"로 재 탄생시킵니다. 우르반 대포의 격렬한 포격전 탓에 동로마 제국이 사용했던 대부분의 궁전이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에 메메드 2세는 현재 "이스탄불 대학"이 있는 자리에 임시 거처인 목조 궁전 (Eski Saray : 에스키 사라이) 을 짓고 1459년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루스 해협, 골든 혼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톱카프 궁전을 건설할 것을 명령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새 궁전인 "톱카프 사라이 (Topkapi Saray)" 를 지을 때 메메드 2세가 제시한 궁전의 밑 그림은 임시 거처로 마련한 목조 궁전인 "에스키 사라이 (Eski Saray)"에 자신의 거처와 하렘을 그대로 두고 톱카프 궁전을 제국의 행정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지어진 톱카프 궁전은 건축 초기 계획했던 대로 오스만 제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고, 술탄의 거처와 하렘은 에스키 사라이에 남겨진 채 이후 3대 술탄 (바예지드 2세, 셀림 1세, 쉴레이만 1세)에 의해서도 메메드 2세가 정립해 둔 제국의 운영 방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2) Harem and Womens
<Fig-3_Sultan Murat-III>
술탄 쉴레이만 1세와 그의 아들이었던 셀림 2세 때 톱카프 궁전 내에 "하세키 술탄 (خاصکى سلطان : 술탄에게만 속한 자, 공식적인 술탄의 아내)" 을 위한 파빌리온 이 지어졌으나, 하렘의 첫 영구 건축물이 지어진 것은 셀림 2세의 아들인 "무라트 3세 (1574~1595)" 에 의해서 입니다. 하렘의 여성들은 크게 카리옐레르 (Cariyeler)와 게디길러 (Gedikiler),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층 계급의 카리옐레르는 하렘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하녀로 연공 서열과 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견습생 (Turkish : çırak, apprentice), 부지배인 (Turkish : kalfa, qualified worker), 관리자 (Turkish : usta, superintendent) 로 구분됩니다. 하렘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여성들은 이스탄불 노예 시장에서 그녀들의 아름다운 미모 덕분에 선택되어 음악가, 가수, 댄서로 훈련 받았습니다. 17세기 베네치아의 대사로서 이스탄불에 머물렀던 "오타비오 본 (Ottavio Bon)" 은 이슬람 세계 이외의 지역에서 선발된 노예 출신의 여성들이 어떻게 하렘에서 무슬림이 되어 가는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Ottavio Bon> They go to school, to learn to speak and read, if they will, the Turkish Tongue, to sew also, and to play upon divers instruments. The several hours every day were ‘allowed them for their recreation, to walk in their gardens, and use such sports as they familiarly exercise themselves with all."
<Fig-4_A photo from the Library of Congress of a Concubine>

이렇게 무슬림으로 개종과 교육을 마친 게디길러 (Gedikiler)들은 하렘 내의"카야 카딘 (Kaya Kadın)" 에게 배속되는데, 카야 카딘은 황후, 즉 술탄의 장자를 낳은 여성으로 하렘 내에서 술탄의 가장 총애를 받는 여인입니다. 카야 카딘은 자신에게 배속된 여성에게 하렘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인 술탄의 후궁이 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시키고, 만약 그 여성이 술탄의 마음에 들게 되면 "괴즈데 (Gozde : in the eye)" 로 지정되어 후궁이 될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하렘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곳으로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기거하거나 출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발리데 술탄 (Valid Sultan), 카야 카딘 (Kaya Kadin), 이크발레르 (Ikballer), 오달리스크 (Obalisk), 카리옐레르 (Cariyeler) 그리고 흑인 환관 (Eunuch)" 이 있습니다.
<Fig-5_Valide Sultan : Ref-4>

1) 발리데 술탄 (Valide Sultan) : 술탄의 어머니입니다. 하렘 내부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술탄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는 경우 섭정을 통해 권력의 제 2인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 카야 카딘 (Kaya Kadın) : 황후, 즉 술탄의 장자를 낳은 여인으로 술탄으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습니다.
3) 이크발레르 (Ikballer) : 후궁, 장자 이외의 아이를 낳은 여인
4) 오달리스크 (Odalisk) : 애첩, 술탄과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여인으로서 향후 이크발레르나 카딘의 지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5) 카리옐레르 (Cariyeler) : 하녀, 하렘의 허드렛일을 맡는다. 
6) 흑인 환관 (Eunuch) : 주로 이디오피아 출신들로 하렘을 지키며, 하렘의 여인들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연락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3) Eunuchs (환관들)
하렘에 거주할 수 있는 부류 가운데 유일하게 여자가 아닌 존재는 환관입니다.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여성은 절대 외간 남자 앞에서 베일을 벗거나 그를 하렘 안으로 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 몇 가지 예외 사항이 "꾸란 24장 31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وَقُل لِّلْمُؤْمِنَاتِ يَغْضُضْنَ مِنْ أَبْصَارِهِنَّ وَيَحْفَظْنَ فُرُوجَهُنَّ وَلَا يُبْدِينَ زِينَتَهُنَّ إِلَّا مَا ظَهَرَ مِنْهَا ۖ وَلْيَضْرِبْنَ بِخُمُرِهِنَّ عَلَىٰ جُيُوبِهِنَّ ۖ وَلَا يُبْدِينَ زِينَتَهُنَّ إِلَّا لِبُعُولَتِهِنَّ أَوْ آبَائِهِنَّ أَوْ آبَاءِ بُعُولَتِهِنَّ أَوْ أَبْنَائِهِنَّ أَوْ أَبْنَاءِ بُعُولَتِهِنَّ أَوْ إِخْوَانِهِنَّ أَوْ بَنِي إِخْوَانِهِنَّ أَوْ بَنِي أَخَوَاتِهِنَّ أَوْ نِسَائِهِنَّ أَوْ مَا مَلَكَتْ أَيْمَانُهُنَّ أَوِ التَّابِعِينَ غَيْرِ أُولِي الْإِرْبَةِ مِنَ الرِّجَالِ أَوِ الطِّفْلِ الَّذِينَ لَمْ يَظْهَرُوا عَلَىٰ عَوْرَاتِ النِّسَاءِ ۖ وَلَا يَضْرِبْنَ بِأَرْجُلِهِنَّ لِيُعْلَمَ مَا يُخْفِينَ مِن زِينَتِهِنَّ ۚ وَتُوبُوا إِلَى اللَّهِ جَمِيعًا أَيُّهَ الْمُؤْمِنُونَ لَعَلَّكُمْ تُفْلِحُونَ - 24:31 (Qur'an 24:31)"
"And tell the believing women to reduce [some] of their vision and guard their private parts and not expose their adornment except that which [necessarily] appears thereof and to wrap [a portion of] their headcovers over their chests and not expose their adornment except to their husbands, their fathers, their husbands' fathers, their sons, their husbands' sons, their brothers, their brothers' sons, their sisters' sons, their women, that which their right hands possess, or those male attendants having no physical desire, or children who are not yet aware of the private aspects of women. And let them not stamp their feet to make known what they conceal of their adornment. And turn to Allah in repentance, all of you, O believers, that you might succeed. (Qur'an 24:31)" 
"베일로 가슴 부분까지 감싸라. 남편, 친아버지, 시아버지, 아들, 의붓아들, 오빠, 친조카, 외조카, 여종, 자기 오른손이 소유하는 것 (노예), 욕망이 없는 남자, 여자의 은밀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유아가 아닌 다른 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서는 안된다. (꾸란 24:31)"
<Fig-6_Chief Black (left) and White (right) Eunuchs : Ref-4>

예외 사항 중 "욕망이 없는 남자"가 바로 환관입니다. 하렘의 여자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환관들은 모두 이방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이슬람 율법은 무슬림들에 대한 "노예화와 신체의 절단"을 금지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초기 시절, 기독교를 믿는 백인 계통의 중앙 아시아인들을 환관으로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술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튼튼한 아프리카 흑인들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주로 이집트 남부, 이디오피아, 수단 등지에서 노획된 후 나일 강과 홍해를 통해 터키로 수입 되었습니다. 거세는 보통 사춘기 이전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어린 소년들이 거세 후 신체적으로 생존율이 높았고, 심리적으로도 현실 적응이 빨랐기 때문입니다. 거세 시술은 보통 기독교인 혹은 유대인들이 시행했는데 무슬림들은 율법적으로 거세의 대상자가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거세 시술을 행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Fig-6-1_A photo from the Library of Congress of a Concubine>

환관들은 이름에서조차 남성의 흔적을 지워버리기 위해 "히야신스, 나르시스, 장미, 카네이션" 등과 같은 꽃 이름으로 불렸고 정상적인 남성이 누리는 행복을 가질 수 없는 그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꿈은 환관의 최고직인 "환관장 (Kizlar Agasi)"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환관들은 비록 노예에 불과했지만 아랍어, 터키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의 언어와 시 그리고 이슬람 율법을 배운 당대 최고의 교양인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환관장에 오르게 되면, 하렘 내부의 일을 총괄할 수 있는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주요 책무 가운데 하나가 술탄과 동침할 애첩을 간택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렘의 어떤 여인도 환관장의 눈에 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술탄과 동침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가인 술탄과 그의 어머니 황태후를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도 다름 아닌 환관장이었습니다. 당시 환관장의 위치는 대재상(Grand Vizier)에 버금갔습니다. 따라서 환관장의 집안 금고에는 하렘의 안팎으로부터 몰려드는 뇌물로 넘쳐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렘은 여자 노예들에게도 사랑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낭만스러운 곳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렘의 여인들은 보통 14 세에 가족과 떨어져 이곳에 들어오게 되며, 그 후론 평생 벽 너머의 세상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렘의 두터운 벽은 그녀들에게 참기 힘든 감옥살이와 마찬가지였고 그녀들이 무엇보다 감내하기 어려운 것은 참혹한 생존 경쟁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카야 카딘 (황후) 혹은 발리데 술탄 (황태후)" 과 같은 권력의 최 정점에 오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경쟁자로부터 갖은 모략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비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인들은 한번 잡은 권력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고 그녀들은 환관장과 결탁하여 되도록 가장 어리고 무능력한 술탄이 권좌에 오르도록 한 후 섭정을 했습니다.

4) 여인통치시대, 록셀라나

<Fig-7_Portrait by Titian titled La Sultana Rossa, 1550 : Ref-6>

1558년부터 1687년까지의 오스만 제국을 흔히 "여인통치시대 (The Regin of Women)" 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하렘의 여성들이 술탄을 등에 업고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로 이때부터 오스만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오스만 제국 초창기에 술탄들은 정략적으로 아나톨리아 혹은 비잔티움 지역의 권문세가 출신의 여성들과 정략 결혼을 했으나 세력이 강한 외척들이 정사에 개입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14세기 이후부터 하렘의 여성 노예에게서 술탄의 후계자를 얻기 시작합니다. 제국 초창기 이후 술탄의 인척들이 권력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술탄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이슬람 사회에서는 적서차별 (정실 부인의 아들과 후궁의 아들을 차별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렘의 "하세키 술탄 (술탄에게만 속한 자, 공식적인 술탄의 아내)" 이 아들을 낳게 되면 그녀의 아들은 술탄의 계승 후보자가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장자 상속 제도를 취하지 않는 독특한 왕위 계승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한 메메드 2세 이후부터 술탄이 사망하기 전, 여러 아들 중 후계자를 지명하면 그 왕자는 술탄에 오르기 위해 모든 형제를 살해하는 존속 살해의 전통이 시작됩니다. 실례로 1595년 메흐메드 3 세 (Mehmed-III) 의 경우, 술탄에 오르기 위해 무려 19 명에 달하는 형제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17세기 이후 제도가 완화되어 술탄의 형제들은 사형 대신 카페스(Kafes)라고 불리는 별궁으로 유폐되는 것으로 바뀌지만, 그 운명의 비참함은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오스만 제국의 독특한 왕위 계승 전통에 기반하여 하렘의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을 술탄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암투가 벌어졌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여성은 환관장과 결탁하여 어리고 무능한 술탄을 권좌에 오르게 한 뒤 섭정을 통해 막대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Fig-8_Roxelana, Muhteşem Yüzyıl (Magnificant Century) : TIMS PRODUCTION, Actress : Meryem Uzerli>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여인 통치 시대의 시작을 알린 여성은 "록셀라나 (Roxelana)" 입니다. 본명은 "알렉산드라 아나스타시아 리소프스카 (Alexandra Anastasia Lisowska)" 로 쉴레이만 1세의 하세키 술탄이며, 오스만 제국 최초의 하세키 술탄이 된 여성입니다. 터키어로는 "휘렘 술탄 (Hürrem Sultan, 오스만 터키어 : خُرَّم سلطان)" 이며, 본래 터키인이 아니라 폴란드 인으로 지금의 우크라이나인 "로하틴" 이라는 곳에서 정교회 사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 정교회는 사제의 결혼을 허용함).

당시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접경 지역에 있던 크림 칸국의 엄청난 약탈과 파괴, 노예 사냥에 시달리게 되는데 크림 칸국은 칭키스칸의 후예인 '하츠 게라이 (Haci Geray, 킵차크 칸국의 후손)' 가 세운 국가로 '제 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러시아 제국에 할양되기 전까지 (퀴췩카이 나르자 조약) 오스만 제국의 비호를 받으며 동양적 군신 관계를 맺고 있던 속국이었습니다. 이러한 크림 칸국의 주요 약탈, 납치 대상은 오스만 제국에 조공을 바치기 위한 상품 가치가 높은 처녀들이었고 이 과정에서 록셀라나 또한 납치되어 크림 칸국의 궁정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 곳에서 칸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의 공녀로 보내진 뒤 쉴레이만 1세의 대신이었던 '이브라힘 파샤 (Ibrahim Pasa)'의 소유가 되었으나, 당시 대신들이 술탄에게 젊은 여성을 헌납하는 풍습에 따라 쉴레이만 1세의 하렘에서 살게됩니다.

<Fig-9_Crimean Khanate and Coat of Arms>

원래 쉴레이만 1세의 총애를 받던 여인은 하렘의 '마히데브란 (Mahidevran)과 귈바하르 (Gulbahar)' 였고 그 둘 사이에 모두 자식을 두었으나, 마히데브란이 술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하렘을 지배하고 있던 발리데 술탄인 '하프사 술탄 (Hafsa Sultan)'이 마히데브란을 지지함으로써 그녀의 아들인 "셰흐자데 무스타파 (Sehzade Mustafa)"가 술탄의 후계자로 지명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록셀라나는 술탄의 마음을 얻고 연적을 제거하기 위한 궁중 암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당시 이스탄불에 주재하던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록셀라나는 제 1후궁 마히데브란과 말다툼을 벌인 후 스스로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내고 술탄에게 마히데브란이 한 짓이라고 일러바쳤다. 술탄은 화가 나서 마히데브란을 하렘에서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편의 부르사로 쫓아냈다."
쉴레이만 1세가 마히데브란이 아닌 록셀라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마히데브란은 술탄에게 순종적인 여성이었으나, 록셀라나는 정교회 성직자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아 매우 지혜로웠고 술탄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지적인 여성이었기에 그 모습에 쉴레이만 1세가 반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록셀라나의 암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술탄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던 "셰흐자데 무스타파 (Sehzade Mustafa)"와 그를 지지했던 오스만의 재상 이브라힘 파샤를 처형하고 완전히 권력을 잡은 록셀라나에 의해 오스만의 두 가지 전통이 깨지게 됩니다.

4)-1) : 정식 결혼 
쉴레이 록셀라나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술탄의 계승 후보자를 낳은 여자도 예외 없이 하렘의 모든 여성들은 다른 나라의 황후들처럼 황제의 사랑을 받고 그 나라의 국모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라 파디샤 (황제)에게 순종하며 제국의 대를 잇는 혈통을 낳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식으로 황후를 두지 않은 이유는 술탄의 인척이 권력에 개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여러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황후로 두게 되면 후계자를 미리 정하는 것이 되어 형제들 사이에 권력 암투가 심해질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록셀라나는 이런 관례를 깨고 오스만 제국 최초로 술탄과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하세키 술탄' 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4)-2) : 하렘의 이전
비잔티움을 명망시킨 술탄 메메드 2세는 톱카프 궁전을 행정 중심지로 만들고 "에스키 사라이 (Eski Saray)"에 자신의 거처와 하렘을 그대로 두어 행정과 생활 공간을 분리했으나, 록셀라나는 하렘의 화재를 빌미로 톱카프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별궁에서 지내던 전통이 깨지게 됩니다. 이후부터 술탄이 죽으면 옛 발리데 술탄 (술탄의 어머니)과 후궁, 노예들이 별궁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술탄을 위한 하렘이 들어서게 됩니다.

5) 록셀라나, 그 이후

<Fig-10_Selim-II : Ref-7>
여인통치시대 이후부터 역대 술탄들은 점차 노예 출신 어머니와 환관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했고, 음란 무도한 생활에 허우적대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3개 대륙을 호령하던 술탄이 아니었고 전투에 직접 참가하여 진두 지휘하는 경우는 사라지게 됩니다. 록셀라나의 아들 셀림 2세 (Selim II, 1566-1574) 바로 가장 대표적인 예에 속하는데, 그는 로도스 , 헝가리, 등을 차례로 공략하여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부친 쉴레이만 1세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절대로 앞에 나서 전장을 지휘하는 법이 없었고  유럽 연합군을 상대로 무모한 레판토 해전을 강행하다 오스만 제국 함대의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멸당하고 맙니다. 레판토 해전의 패배 이후 오스만 제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무능력했던 그가 유일하게 있는 일은 하렘에서 애첩들과 노닐며 술주정하는 것 뿐이었고, 어느 술에 취한 벌거벗은 처녀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가 대리석 바닥에 미끌어 넘여져 허망하게 사망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이슬람의 성 문화와 하렘, 여인통치시대 등 톱카프 궁전의 하렘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내용이 전반을 이뤘다면 이제부터 톱카프 궁전의 하렘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4. Touring the Harem
임페리얼 하렘 (Harrem-i Humayun)은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 (Valide Sultan)과 하세키 술탄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이 거주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총 400개 이상의 방이 있었습니다. 하렘은 복도와 마당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건물로 수 많은 방들 중 일부만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톱카프 궁전의 하렘은 "미마르 시난"이 설계한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골든 혼쪽으로 확장되어 거대한 복합 건물로 진화하는데 증축된 건물들은 건물 디자인의 양식적 변화가 일어나며, 마흐무드 1세 (Mahmud-Ⅰ)와 오스만 3세 (Osman-Ⅲ) 때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받은 "오스만 바로크 양식" 탄생하여 오스만 고전 시대 건축물과 대조를 이루게 됩니다.

<Fig-11_Touring the Harem_1),2),3) : Ref-1>

1) 수레의 문 (The Gate of Carts Entrance) (See Fig-11)

<Fig-12_The Gate of Carts Entrance>

두 번째 정원과 연결되어 있는 하렘 출입구를 "수레의 문 (The Gate of Carts Entrance)" 이라고 부릅니다. "수레의 문" 이라는 이름은 하렘에 거주하는 여성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이슬람 전통에 따라 옷으로 몸을 가리고 커튼이 쳐진 마차 (수레)에 타고 외출했기 때문에 이 관례에 따라 지어진 이름입니다.

2), 3) : Domed Cupboard Room and Ablution Chamber (See Fig-11)
수레의 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영어로 "Domed Cupboard Room" 또는 터키어로 "Dolaplı Kubbe (Dolaplı : 캐비넷, Kubbe : 돔)" 라고 부르는 첫 번째 방이 나옵니다. 이 곳은 1587년 무라드 3세가 술탄과 황실의 재정 기록 (Financial Records)과 신탁 증서 (Deeds of Trust)의 보관, 하렘에서 운영하는 자선 재단의 돈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방으로 황실의 재정과 관련되어 있어 당대 환관장이 관리하던 곳 입니다. "Domed Cupboard Room" 을 지나면 하렘에서 시중들던 흑인 환관들이 모스크에서 "살라트 (기도)" 를 하기 전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행위인 "우두 (몸을 씻는 행위)" 를 하는 "재계실 (Ablution Chamber also known as “Sofa with Fountain, Turkish : Şadirvanli Sofa)" 이 있고, 재계실의 벽은 화려한 이즈닉 타일 (See Fig-4)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재계실 (Ablution Chamber)은 하렘의 출입구와 연결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항상 흑인 환관들의 보호 아래 출입하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허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Fig-13_Hall of the Ablution Fountain with Iznik Tiles : Ref-3>

<Fig-14_Touring the Harem_4),5),6) : Ref-1>

4), 5) : Courtyard of the Eunuchs and Barracks of the Black Eunuchs (See Fig-14)

<Fig-15_Courtyard of the Black Enunchs : Ref -5>

3)번 재계실 (Ablution Chamber)을 지나면 양쪽 벽면이 "이즈닉 타일 (Iznik Tile)"로 장식된 길고 좁은 복도를 마주하게 됩니다.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A.H. 1079 (A.D 1668~1669)" 라고 적힌 명판을 볼 수 있는데, 이 명판은 1665년 대 화재로 파괴된 하렘이 1668년부터 1669년까지 메흐메트 4세 (Mehmet-IV)에 의해 재건 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한 명판입니다. 맨 끝 맞은편 하렘의 입구와 연결된 좁은 복도의 왼편에는 10개의 대리석 기둥이 열주를 이루고 서 있고, 열주 아치에는 "수레의 문 (The Gate of Carts Entrance)" 으로 가는 길을 비췄던 램프가 걸려 있었습니다.

<Fig-16_Barracks of the Black Eunuchs, plan and section : Ref-4>

대리석 기둥, 즉 열주 아치의 맞은 편은 3층으로 된 환관들의 거처로 맨 윗 층은 신임 환관들이 사용했고 안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은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환관들의 거처였습니다. 겨울철 난방을 위해 방의 한 쪽 끝에는 18세기 퀴타히아 타일 (Kutahya Tiles) 로 장식된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18th Century Kütahya Tiles
"퀴타히아 (Kütahya)"는 터키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이즈닉 타일을 만들어낸 "이즈닉" 이후로 가장 중요한 세라믹 생산지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 풍부하게 쌓여있는 점토를 사용하여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시대에 도자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퀴타히아 지역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은 이즈닉과 거의 유사한 방식의 기술로 건축 장식에 사용되는 광범위한 타일과 가정용 도자기를 생산했습니다.
 
<Fig-17_Kütahya Ceramics : Ref-8>

6) Schoolroom of Princes
환관들의 숙소가 있는 복도 끝,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왕자들의 교실로 이어집니다. 술탄의 어린 아들들은 열 살 혹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하렘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환관장이 초빙한 외부의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 이 교실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교실은 나무로 된 돔으로 벽의 윗 부분에는 화려한 이즈틱 타일에 꽃무늬 관목, 편백나무 장식을 하고 아랫 부분에는 정교하게 조각한 로코코 양식의 금박을 입힌 목조 판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목조 판넬의 윗 부분에는 당대 칼리그래퍼로 명성이 높던 "베이시르 아자 (Beşir Ağa : kızlar ağası)" 의 칼리그래피가 있고 비문의 제작 연대를 나타내는 "A.H.1162 (1749)" 라는 명판이 있습니다. 왕자들의 교실이 오스만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된 데에는 "베이시르 아자" 의 덕분이나 3년 후 마흐무트 Ⅰ세에 의해 처형당하고 맙니다.

<Fig-18_Touring the Harem_7),8),9),10),16) : Ref-1>

7), 8) : Gate for All (Women's Quarters) and Guard Room (See Fig-18)
"Fig-15" 의 복도 맨 끝, 이 문 (Fig-19)을 경계로 세속과 신성함의 구분이 시작됩니다. 하렘의 본관 입구는 "뮐레 카프스 (Cümle Kapısı)" 라 (즉 정문 : Main Entrance) 부르며 아치 입구의 윗 부분에 "Shahada (샤하다)" 가 있는데, 샤하다는 이슬람의 신앙 고백 문구로서 무슬림의 5대 의무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이며 (나머지 넷은 하지 (حج‎) - 메카 성지순례, 사움 (صوم‎) - 라마단 금식, 자카트 (زكاة‎) - 자선, 살라트 (صلاة‎) - 하루 다섯 회 기도) 이슬람에 입교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의식입니다. 샤하다 또한 반드시 아랍어로 암송해야 하며 읽는 법과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라-일라-하, 일라-알라, 무함마둔 라술룰라"
"하나님(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

공개적으로 샤하다를 암송하는 것은 "유일신 알라와 무함마드를 알라의 선지자로 받아 들인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Fig-19_Shahada on Cümle Kapısı : Ref-9>

뮐레 카프스 (Cümle Kapısı)를 통과하면 18세기 이후로 이곳에 걸려 있던 금 빛 잎으로 장식된 "베네치아 거울 (Venetian Mirrors)" 이 있고, 이 거울을 기준으로 왼쪽 문이 후궁들의 거처이고 (Corridor of Concubine), 가운데 문이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 (Valide Sultan)의 방이며, 오른쪽 문은 술탄의 개인 거처와 연결되는 "골든 로드 (Golden Road)" 입니다.

<Fig-20_Venetian Mirrors on the Walls : Ref-10>

<Fig-21_Corridor of Concubines and Golden Road : Ref-11>

9), 16) : Courtyard of the Mother Sultan and Private Apartment (See Fig-18)
"베네치아 거울 (Venetian Mirrors)" 을 기준으로 왼쪽 아치형 문을 통과하면 "발리데 술탄의 안뜰 (Courtyard of the Valide Sultan)" 과 후궁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후궁의 안뜰 (Courtyard of the Concubines)" 이 나오게 됩니다.

<Fig-22_Countyard of the Mother Sultan (Valide Sultan) : Ref-12>

발리데 술탄의 숙소는 16세기 후반 "에스키 사라이 (Eski Saray : 옛날 궁전)에 있던 하렘이 톱카프 궁전으로 이전되면서 새롭게 지어졌으나 1665년의 대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이후 복원 공사를 통해 재건하게 됩니다. 하렘 내부에는 "A. H. 1077 and 1078 (1666~1668)" 이라는 비문이 곳곳에 걸려 있는데 이는 제 19대 술탄인 메흐메트 4세 시대인 1666년부터 1668년 까지의 기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렘이 현재의 모습대로 복원된 공사 기간을 나타냅니다. 하렘의 전체 공간 중 서쪽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리데 술탄의 숙소는 이층 구조로 1층은 일상 생활을 하는 곳이고 2층이 침실이며, 각 층마다 4개의 방을 가지고 있어 총 8개의 방이 있으나 아쉽게도 현재 일반에게 공개되는 곳은 다이닝 룸 (Dining Room)과 접견실이 있는 발리데 술탄의 침소 뿐입니다.

<Fig-23_Dining Room in the Apartment of Valide Sultan>

발리데 술탄의 다이닝 룸은 18세기 "퀴타히아 타일 (Kütahya Tiles)과 풍경화" 로 장식되어 있는데 동시대의 서양화와 달리 풍경화에 사람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이슬람의 우상 숭배 금지에 따라 예술에 인간을 묘사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입니다. 하렘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대부분의 타일들은 나무, 꽃, 숲 등을 주제로 하는데 그 이유는 하렘의 폐쇄성에 있습니다. 톱카프 궁전의 다른 공간들은 하렘과 달리 각 구역별로 딸려 있는 정원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데 반해 하렘은 좁고 밀폐된 공간의 특성상 내부에 정원을 조성할 수도 없고 외부로 개방할 수도 없기 때문에 벽면을 장식하는 타일에 나무와 꽃, 숲 등을 새겨 내부 장식으로 조경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Fig-24_Finely Decorated with Trees and Flowers by Iznik Tile>

또한 전체적인 실내 장식 및 천장 부위가 오스만 전통 양식과는 많이 다른데 이는 18세기부터 유럽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오스만-로코코" 양식의 영향으로 다채롭고 화려한 장식 (See Fig-23, 24, 25, 25-1, 26) 이 그 특징입니다.

<Fig-25_Uppart of the Dining Room>

<Fig-25-1_Uppart of the Dining Room>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발리데 술탄 (Valide Sultan)"의 숙소 내부는 1789년 로코코 스타일로 방을 개조한 셀림 3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진주 상감모"와 "이즈닉 타일" 이 벽면을 따라 내부를 장식하고 있고 그 위에 프레스코 화가 있습니다.

<Fig-26_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 of the Valide Sultan : Ref-14>

<Fig-26-1_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 of the Valide Sultan : Ref-15>

<Fig-26-2_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 of the Valide Sultan : Ref-16>

벽난로 오른쪽의 아치형 문은 접견실을 갖춘 발리데 술탄의 침소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Fig-18" 에서 보듯이 발리데 술탄의 숙소는 후궁들의 거처와 술탄의 거처를 정확하게 가운데서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렘의 본관 입구 (Gate for All)를 통과한 술탄은 골든 로드 (Golden Road : Red line of Fig-18), 즉 황제의 길을 따라 술탄의 거처로 향했고 후궁들의 거처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아침마다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기 위해 어머니의 방을 찾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는데, 이때 발리데 술탄은 술탄에게 소개 시켜주고 싶은 여인을 골라 차를 내오게 했다고 합니다. 차를 내온 여인이 마음에 들 경우 술탄은 앞으로도 저 여인이 계속 차를 내왔으면 좋겠다고 말함으로써 발리데 술탄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Fig-27_Exhibit representing the Queen Mother and her attendants in her apartments>

10) : Corridor of Concubines (See Fig-18)

<Fig-28_Corridor of Concubines>

좁고 어두운 복도가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후궁들의 안뜰 (Courtyard of the Concubines)" 이 나오고 각 후궁들에게 주어진 개인 거주 공간이 나옵니다. 복도의 나무 선반은 후궁들의 끼니를 챙기던 곳으로 흑인 환관들이 서열 순에 따라 음식을 두고 가면 후궁들이 문을 열고 나와 음식을 방으로 가져갔습니다.

<Fig-29_Wooden Shelving in the Concubines Corridor>

<Fig-30_Wooden Shelving in the Concubines Corridor>

<Fig-31_Touring the Harem_11),12),13),14),15) : Ref-1>

11) : Courtyard of the Concubines
12) : Haseki Sultan's Apartment
13) : Apartment of the Concubines
14) : Bath and Laundry
15) : Kitchen

<Fig-32_Courtyard of the Concubines : Kadın Efendiler Taşlığı / Cariye Taşlığı>

"후궁들의 안뜰 (Courtyard of the Concubines Kadın Efendiler Taşlığı / Cariye Taşlığı )"은 하렘 안에서 가장 작은 정원으로 1585년 무라드 3세에 의해 톱카프 궁전에 하렘이 지어질 때 건설되었으나 1665년 대화재로 인해 많은 부분이 소실되고 이후 복구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포르티코 (Protico : 열주로 지붕을 지지하고, 적어도 한쪽면이 개방되어 있는 건축 부분) 로 둘러싸인 뜰에는 목욕탕과 세탁소, 하세키 술탄과 후궁들의 거처가 있으며, 후궁들의 거처는 매우 좁고 열악한 반면, 술탄의 아이를 낳은 하세키 술탄들은 세 개나 되는 방과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골든 혼이 내려다 보이는 호화로운 숙소에서 생활했습니다. 후궁들의 안뜰에는 발리테 술탄의 숙소로 연결되는 작은 문 (See Fig-34)이 있고, 문 주변으로는 18세기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풍경을 묘사하는 프레스코화 (See Fig-34, 35)가 그려져 있습니다.

<Fig-33_Courtyard of the Concubines>

<Fig-34_The Door connected to the Valide Sulant's Apartment>

<Fig-35_Frescoes Painting on the Wall>

<Fig-36_Touring the Harem_17),18) : Ref-1>

17) : 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See Fig-36)
발리데 술탄의 숙소를 지나면 술탄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사용했던 황실 목욕탕 (Hünkarhr Hammı)이 나옵니다. 이 목욕탕은 1580년에 미마르 시난이 설계한 것으로 "히포카우스트 (Hypocaust)" 라는 난방 기술을 이용하여 욕탕의 바닥부터 데워지고 구조 또한 "칼다리움 (Caldarium), 테피다리움 (Tepidarium) 그리고 프리기다리움 (Frigidarium)" 으로 구성되어 로마식 욕탕과 동일하게 설계 되었습니다. 황실 목욕탕은 미마르 시난의 최초 설계대로 이즈틱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1574년의 화재로 인한 훼손과 블루 모스크로 더 많이 알려진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Sultan Ahmet Camii)" 를 장식하기 위해 1609년 아흐메드 1세에 의해 상당 부분이 제거됩니다.
"1) 칼다리움 (Caldarium)"                                                                             : 로마의 공중 목욕탕인 "테르메 (Thermae)" 는 고대 그리스의 욕탕과 마찬가지로 "히포카우스트 (Hypocaust)" 라는 난방 기술을 이용합니다. 노예가 공중탕 바닥 아래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뜨겁게 데워진 증기가 돌을 쌓아올린 기둥 사이를 지난 다음 위로 상승하여 공중탕 전체와 물을 데우는 원리입니다. 이처럼 로마인들은 정교한 난방 기술을 이용하여 온탕과 냉탕이 분리된 테르메 (Thermae) 건설함으로써 수준 높은 목욕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테르메를 이용하는데 엄격한 규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탕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팔레스트라 (Palaestra : 운동장)"에서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을 헐떡일 때까지 운동을 하고, 그런 다음 탈의실인 "아포디테리움 (Apodyterium)" 에서 노예에게 돈을 주고 "토가 (Toga)"를 맡긴 뒤 미온수가 채워진 "테피다리움 (Tepidarium)"으로 들어가 몸을 덥히며 점점 더 미지근한 탕으로 이동하다가 한증막인 "수다토리아 (Sudatoria)" 에서 뜨거운 증기를 쐰 후 온탕이 있는 "칼다리움 (Caldarium)" 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 노예들이 목욕을 하는 주인의 몸에 올리브 오일을 바르고 쇠로 된 긁개인 "스트리길 (Strigil)"로 때를 벗긴 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테피다리움 (Tepidarium)" 으로 들어갔습니다.
"2) 테피다리움 (Tepidarium)과  프리기다리움 (Frigidarium)"                        : "테피다리움 (Tepidarium)" 은 욕탕이 없는 적당히 따뜻한 방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 곳에서 잠시 열기를 식힌 뒤 냉탕이 있는 "프리기다리움 (Frigidarium)" 에서 찬물 목욕을 한 후 다시 기름을 바르고 때를 벗겨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Fig-37_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Ref-17>

<Fig-37-1_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Ref-18>

각 목욕탕의 천장은 돔 또는 벌집 모양의 격자 구조로 된 유리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별도의 인공 조명 없이 외부의 햇빛으로 실내 조명을 사용하며, 바닥에는 흰색과 회색 대리석을 깔아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 시킵니다.

<Fig-38_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Ref-19>

또한 "Fig-39" 의 황금 격자 가림막은 술탄의 방어가 가장 허술한 때인 목욕을 하는 동안 암살자로부터 살해되거나 해를 입지 않도록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Fig-39_Bath of the Sultan with Gilded Grill>

<Fig-39-1_Bath of the Sultan with Gilded Grill : Ref-20>

<Fig-39-2_Bath of the Sultan with Gilded Grill : Ref-21>

18) : Imperial Hall (See Fig-36)

<Fig-40_Imperial Hall : Ref-22>

임페리얼 홀 (Hünkâr Sofası)은 톱카프 궁전의 하렘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16세기 후반인 1580년 무라드 3세의 통치 기간에 건설되었습니다. "왕실 (Throne Room)" 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술탄이 외부 인사를 맞이하는 공식 접견장으로 하렘에서의 향응, 발리데 술탄 (술탄의 어머니) 과 하세키 술탄 (첫 번째 아내) 의 접견, 결혼식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공간의 목적 상 술탄의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고 암살에 대비하기 위해 거울 뒤에  비밀 문이 있습니다.

<Fig-41_Sultan's Throne>

술탄의 왕좌는 임페리얼 홀 (Hünkâr Sofası)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왼쪽의 갤러리에는 발리데 술탄 (Valide Sultan : 술탄의 어머니)과 술탄의 왕비들이 차지했던 자리 입니다. 금박을 입힌 의자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선물이며, 오른 편의 시계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것 입니다.

<Fig-42_A Clock given by Queen Victoria>

<Fig-43_A Clock given by Queen Victoria>

<Fig-44_Gallery of Queen Mother (Valide Sultan) : Ref-23>

임페리얼 홀 (Imperial Hall) 또한 1666년 하렘의 대 화재 이후 술탄 오스만 3세 때 오스만-로코코 양식으로 개 보수가 진행되었으나, 돔 형태의 천장 아치와 펜덴티브에는 원래의 건축에서 유래한 고전적인 장식들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Fig-45_Dome after Restoration : Ref-24>

<Fig-46_Dome before Restoration: Ref-25>

18-1) : Decorations of Imperial Hall (See Fig-36)
임페리얼 홀 (Imperial Hall) 전체가 장인 정신이 깃든 인상적인 작품들과 명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1666년 대 화재 이후 로코코 스타일의 내부 장식으로 재 탄생되게 됩니다.

<Fig-47_Door_Rococo Style: Ref-26>

<Fig-48_Fountain_Rococo Style : Ref-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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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ference
1) Rick Steves' Tour : Topkapi Palace, Istanbul
2) Imperial Hall in Harem
https://theistanbulinsider.com/wp-content/uploads/2019/11/harem-imperial-hall.jpg
3) Hall of the Ablution Fountain : https://farm5.staticflickr.com/4850/31016648867_0c4239d906_b.jpg
4) A History of Ottoman Architecture, J Freely (2011)
5) Courtyard of the Black Eunuchs : https://i1.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3/09/IMG_2633.jpg?fit=4032%2C3024&ssl=1
6) Portrait by Titian titled La Sultana Rossa, 1550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1/Tizian_123.jpg/330px-Tizian_123.jpg
7) Selim-II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b/II._Selim_Han.jpg/800px-II._Selim_Han.jpg
8) Kütahya Ceramics : https://www.vam.ac.uk/__data/assets/image/0011/188759/2006AM7266_pilgrim_flask1.jpg
9) Harem Main Entrance : https://www.turkeysforlife.com/wp-content/uploads/2016/01/topkapi-palace-harem-entrance.jpg
10) Venetian Mirrors on the Walls :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E99345C054E4906
11) Corridor of Concubines and Golden Road :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2F9505C08DFAB15
12) Courtyard of the Mother Sultan : https://static.wixstatic.com/media/a27d24_7b0d987005ba4a42a7ccdeafcc99f297~mv2.jpg/v1/fill/w_1000,h_500,al_c,q_90/a27d24_7b0d987005ba4a42a7ccdeafcc99f297~mv2.jpg
13)Courtyard of the Concubines : https://pieypq-sn3302.files.1drv.com/y4mPaxKFteaobb291WvUB3TEKcOY4lDO9nn_Vakd3IhRsJmea0U7gE2eWnckJfjitnW0rDCjbd-iuQR4uNjGeLDgBAG5A1jsBb3amMbgIrkQjHfQi-1urAkb0WcU5c8Qm0fTXiXnrfjEyev28Gben0D1HJn-h416_TVpeFE-PXBetK1PeaqOa30s0Ll05HqD2oa3-3pxG404yZ8c30dW0KDWA?width=1024&height=681&cropmode=none
14) 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s of the Valide Sultan : https://lh3.googleusercontent.com/-5nK_-dMvgrU/V-Qq-DONTuI/AAAAAAADWIk/xpmYWt2ZyRk/image_thumb89_thumb%25255B2%25255D.png?imgmax=800
15) 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s of the Valide Sultan : https://i0.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6/09/dsc00898.jpg?zoom=2&resize=357%2C470&ssl=1
16) Mother of Pearl at the Apartments of the Valide Sultan : https://lh3.googleusercontent.com/--a2oBGHd1Dk/V-QrDO7IHCI/AAAAAAADWIw/qikd1uRVN6c/image_thumb901_thumb%25255B3%25255D.png?imgmax=800
17) 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https://lh3.googleusercontent.com/-OlhXrY5RhU4/V-QrL7uyKeI/AAAAAAADWJI/uftMqpzGep8/image_thumb51_thumb%25255B2%25255D.png?imgmax=800
18) 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https://i0.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3/09/IMG_8678.jpeg?resize=768%2C576&ssl=1
19) Sultan's Private Bath (Imperial Bath) : https://i2.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3/09/IMG_8675.jpeg?resize=768%2C1024&ssl=1
20) Bath of the Sultan with Gilded with Grill : https://lh3.googleusercontent.com/-mLbMFT9Acc8/V-QrQn3a5_I/AAAAAAADWJU/Ntl-ebChIHo/image_thumb56111_thumb%25255B3%25255D.png?imgmax=800
21) Bath of the Sultan with Gilded with Grill : https://i0.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3/09/IMG_8676.jpeg?resize=768%2C576&ssl=1
22) Imperial Hall : https://alchetron.com/cdn/imperial-harem-9b8ff260-7c15-438a-80ef-6e49173d4fb-resize-750.jpg
23) Gallery of Queen Mother (Valide Sultan) : https://i2.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9/05/IMG_2652.jpg?resize=768%2C576&ssl=1
24) Dome after Restoration : https://www.admiddleeast.com/public/styles/full_img/public/images/2020/01/05/thamb.jpg?itok=Wrhtv8m_
25) Dome before Restoration : https://i1.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6/09/dsc00908.jpg?zoom=2&resize=467%2C355&ssl=1
26) Door_Rococo Style : https://i2.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9/05/IMG_2658.jpg?resize=768%2C1024&ssl=1
27) Fountain_Rococo Style : https://i2.wp.com/nomadicniko.com/wp-content/uploads/2019/05/IMG_2662.jpg?resize=768%2C1024&ss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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